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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125호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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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11 - 펜타프레스 ] 자연과 어우러진 종묘의 조화로운 풍경. 종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에 위치한 유적시설이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유교 사당으로 시설과 제례의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한민국 사적 제125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고, 종묘의 중심 사당인 종묘 정전은 국보 227호로 보호받고 있다. 사당은 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제를 올리는 시설이다. 고대 국가에서 제사는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였다. 종묘사직이라는 말도 가장 중요한 두 제사에 관련된 단어다. 사직은 토지신과 곡식신을 뜻하며, 농업이 근간이던 시대 왕이 하늘에 풍작과 번영을 바라는 제사를 올린 것이 종묘 제사의 기원이다.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종묘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와 사직에 올리는 제사는 정통성있는 정권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종묘를 비롯한 사당에 신주를 모시는 행위는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고구려, 백제시대 왕의 상징물에 제사를 올린 기록이 있으나 통일신라 시대에 와서야 신위를 모신 종묘제도가 문헌에 등장한다. 유교식 종묘는 상, 주나라의 제도를 선호한 공자에 따라, 7대 조상까지 사당에 신위를 모셨다. 7위 혹은 7묘제라 하고 신위의 수에 따라 5묘, 9묘가 된다. 흔히 종묘로 일컬어지는 조선왕조의 종묘는 태조 4년에 5묘제로 지어졌다. 중국 천자가 7위이상을 지었으므로, 신라전통을 따르며 건국 초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결정이었다. 세종 원년, 정종 사망시에는 이미 종묘 정전의 5묘에는 신위를 모실 자리가 없었다. 유교 주나라 전통에서는 가장 오래된 신위를 땅에 묻어 자리를 확보한다. 세종은 신위를 땅에 묻는 대신 새로 영녕전을 지어 5대 전 조상을 모시게 했다. 왕조가 안정되고 중국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강력한 권위를 가진 인물을 영녕전에 옮기지 않는 사례가 생겼고 종묘 정전은 점점 증축으로 규모가 늘어났다. 종묘와 종묘대제의 원전, 절차는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나 문화대혁명을 거친 중화인민공화국과 달리 전통의 맥을 이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유교의 발생지인 중국 학자들이 유교 연구를 위해 한국을 공부해야 할 실정이 문화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사진: 서울특별시

기사 입력: 20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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